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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현진, Hello my dearest,, 2022, 다채널 영상 설치.

Re: Fwd: 안녕 가장 사랑하는 사람, Hello my dearest,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폐허에 혼자 남은 순간을 기억한다. 내 세계가 요란하게 부서진 다음 날, 균열 하나 없이 견고하던 우리 세계를 기억한다. 혼자 남았다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무너진 세계에서 도망치기만 했다. 도망치지 않고 폐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폐허 위에 무언가를 짓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도망친 자리에 또 혼자 남았을 누군가에게 변명과 사과의 마음을 담아 이 메일을 전한다. 도망치느라 살피지 못한, 함께 어떤 세계에 살던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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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된 메시지:

어떤 것은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글자에 머물러 있다. 내 몸속 깊은 곳의 장기나 세균 같은 것이 그렇고, 추상적이어서 애당초 질량이 없는 마음과 같은 것이 그렇고, 인간이 한 번에 파악하기엔 너무 커서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글자를 통해서, 그를 묘사하는 타인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러니까 한 번도 내가 파악할 수 있는 크기로 만난 적 없는 세계와 같은 것을, 나는 그런 이유로 남들의 말과 글자로만 배울 수 있었다.

세계라는 단어를 언제 배웠나 생각하면 모호하게 몇 가지 떠오른다. 그 순서나 중요도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저화질로 녹화된 서구의 영상들이다. 내가 어릴 적엔 카메라나 캠코더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가부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기록된 사진이나 영상을 방송국에 보내 자기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런 홈 카메라 비디오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되었다. 그 때 한국 사람들은 자기 일상을 방송에 드러내기 조금 꺼렸던 것 같고, 모두가 매주 방송에 내보낼 수 있을 만큼 좋은 캠코더나 좋은 집을 갖고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홈비디오엔 나와 다른 모습의 아기, 우리 것과 다른 모습의 집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했다. 피부색에 상관없이 저화질의 아기 얼굴은 주로 쭈글쭈글했고, 동서를 막론하고 집은 바닥과 천장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영상들 한쪽에는 종종 <월드>라거나 <세계>라거나 <해외>와 같은 단어가 붙었다. 나와 다른 것 같지 않지만 무엇인가 다르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는 곳, 어쩌면 홈이 무엇인지를 가르친 홈비디오들, 나의 세계는 아마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홈비디오 프로그램처럼 세계를 알리는 방송 꼭지가 몇 더 있었다. 예를 들어 뉴스는 하루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세계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의 어린 시절 뉴스는 지금보다 심각한 이야기들이 조금, 그리고 지금보다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식사 중에 텔레비전 보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는데, 뉴스는 예외였다. 그는 꼭 뉴스를 보며 특정되지 않는 누군갈 열정적으로 훈계하곤 했다. 어른들은 알 수 없는 존재다. 6시에 한 번, 7시에 한 번, 또 9시에 한 번 한 시간씩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말들을 매일 반복하니까.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으니까. 어쩌면 똑똑함이란 그런 전해지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한 시간짜리 뉴스의 구성은 대체로 비슷했다. 30분 정도 국내에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소개하고, 10분 정도 외국의 정보를, 10분 정도는 남자들이 공 차는 소식을, 5분 정도는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중 외국 소식을 전하는 그 10분의 꼭지에는 언제나 <세계는지금>과 같은 무겁고, 세련되어 보이는 이름이 붙었던 것 같다. 내용도 그리 활기차지는 않았다. 그곳엔 전쟁이 있었고, 화재가 있었고, 어떨 땐 낭만이 있었고, 부유함이나 느긋함 같은 것이 있었다. 세계는 좀 극단적으로 보였다. 세계의 사람들은 어디선가 불타 죽고 있고, 어디선가는 햇빛에 피부를 태우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내 또래는 당연히 세계라는 단어를 이해하기엔 다들 모자랐는데, 우리가 즐겨보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늘 세계 타령을 했다. 그것은 주로 내 또래쯤의 어리거나 젊은 주인공이 이상한 차림을 하고 세계를 수호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눈에 그것은 그저 일본 어딘가 작은 마을 같아 보이는데, 주인공들은 그것을 세계라고 불렀다. 항상 좀 검은색이거나 빨갛거나 하는 캐릭터들은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이 무슨 이야긴지 모르면서도,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람을 무찌르는, 정의롭고 이상한 차림을 한 주인공 무리를 응원했다. 그러니까 세계는 모두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것 같았다. 세계는 한 사람이 쥐락펴락하면 안 되는 것이고, 세계는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여주인공은 세계라 불리고, 세계를 잃은 사람은 눈동자에 안광이나 동공이 사라지는 그런.

그런 세계들이 연결되거나 지어졌던 순간은 기억에 없으면서도, 그것이 쪼개어지거나 무너진 기억은 몇 있다. 20살에 처음 서울로 올라와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 나는 그 무렵의 여느 게이들처럼 잭디나 그라인더 등에 몰두했다. 평소에는 만날 일 없는, 지나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좀 혼란스러운 스무 살을 보냈던 것 같다. 세계가 쪼개어지는 소리는 아마도, 이제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서 들려왔다. 그는 우리가 함께하면서도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일반 친구들과, 사회 속 동료들과 함께인 순간들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타인들이, 나와 같은 세계에 공존해서는 안 되는 타인들이 함께하는 장면들을 무수히 떠올렸다. 사실 부러 떠올릴 필요도 없이 현실에서 그런 일은 왕왕 일어났다. 그는 그것을 세계라는 단어로 묘사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세계와 이쪽 사람들을 만나는 이쪽 세계. 그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쪼개어진 이쪽 세계는 종종 호명되었다. '이쪽 세계는 그렇죠 뭐' 라든가, '이쪽 세계는 좁으니까' 와 같은. 그러니까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아주 명확하게 쪼개어졌다. 다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아직도 많은 친구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개씩 만들어 그 팔로워를 구분하며 산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 본명인 아이디로 살다가도, 언젠가는 그와 팔로우나 팔로워가 단 한 명도 겹치지 않아야 하는 익명의 계정으로 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부캐라 이름 붙이고 기꺼이 흉내 낸다. 내 세계는 그곳에서 다시 쪼개어진다. 필사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분해내는 사람들과 그것을 흉내 내며 유희할 수 있는 사람들로.

글자인 세계는 글자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세계가 글자인 만큼, 그것을 지탱하는 것도 글자나 말뿐이다. 그래서 내게 여러 글자를 가르친 어른들과 선생님들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저마다의 세계를 하나씩 세워두었다. 그것은 각기 규칙과 정의가 있었는데, 그것이 부딪힐 땐 그중 하나가 깨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 세계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내 세계가 세워져 있지 않다는 가정하에 그들의 세계를 세웠다. 어떤 순간까지 그것들은 잘 유지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때때로 그들이 어떤 말을 할 때 그 세계들은 무엇과도 부딪히지 않고 부서졌다. 마치 열을 견뎌내지 못한 두꺼운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와 충격을 사방에 토해내며 깨졌다. 괴상한 차림의 만화 주인공들이 지켜내려고 애쓰던 세계는 그렇게 허무하게 스스로 조각난다. 그들은 이것도 이미 알았을까? 그들이 지켜내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년 동안 애쓰던 세계가 어떤 악역 하나 없이 스스로 깨지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어린 시절 내가 처음 이쪽 세계를 배운 공간은 이태원이었다. 그곳은 혼란으로만 가득했던 내게 친구들이 알려준 우리 공간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채워지든, 그곳에서의 우리 비밀이 얼마나 희석되었든, 나의 익숙함은 늘 그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실재하는 공간 없이 쪼개어둔 이쪽 세계가 이태원에는 있다. 자주 닿지 않은 공간이고, 내가 그곳에서 그리 안전함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아직 나는 친구들이 그곳을 친정이나 고향이라 부르던 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나의 어린 시절과 친구들의 어린 시절과 내게 남은 미지근한 기억들에 슬픔이 차오른 어제와 오늘, 내 세계가 또 어딘가 부서졌다.

나 또한 언젠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처음 이태원에 간 날도 할로윈이었다. 할로윈은 커밍아웃 없이 퀴어가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날이다. 우리가 드랙을 하든, 제복을 반쯤 나체로 입든, 도그플 복장을 하든, 가죽이나 라텍스를 입든, 그것은 그저 할로윈 분장일 뿐이다. 할로윈은 그래서 퀴어를 위한 날일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갔던 이태원도 그랬다. 할로윈이라 서울의 모든 게이가 모인 듯 발 디딜 틈이 없어 모두가 펄스 앞에서 한참 줄을 섰다. 만약 내가 올해 스무 살이었다면, 나는 그저께 죽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렸던 내 친구들도 그곳에서 죽었다. 나는 만리타국에서 철저하게 타인이면서도, 어린 나와 어린 내 친구들이 모조리 죽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grp4t7f962는 자기 세계 너머 이곳으로 건너오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첨부파일을 통해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서 세계는 <세계는지금>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의 글자나 참사로 부서진 나의 세계처럼 들린다. 우리가 저마다 모두 하나의 세계라고 상상한다면, 그는 자신으로 인해 유지되는, 혹은 지금의 자신을 유지하게 하는 단 하나의 세계를 떠나 이 세계로 오고자 한다. 누구의 이름도 아니면서, 언젠가 한 번씩은 우리의 이름이었을 grp4t7f962의 세계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그저 열기구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소리 없이, 매일 일어나는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철저히 타인의 일인 것처럼 저 멀찍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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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된 메시지: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그의 조난 신호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있다. 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서툰 외국어에 의해, 실패한 번역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사랑은 무너지는 그의 세계를 <세계는지금>의 세계로,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사는 세계로 전이시킨다. 누군지도 모를,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의 사랑이. 혹시나 이 메일을 수신한 우리가 될 지도 모르는 그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