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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이미지: 달 탐사선, 2021, 1080p 단채널 영상, 색상, 2분 42초.

영어 자막 번역 감수: 이건희.
영상 링크: U'=Ø: 전체의 나머지는 없다, 2021, 세오갤러리, 서울.

달 탐사선, 2021


이 기록은 1992년 10월 13일 발사된 아폴로234y78e626h82j90가 2022년 9월 28일에 보낸 그 동안의 관찰 일지다. 발사 7년 후까지는 관찰 기록이 자주 전송되었으나, 15년 후부터는 자료 전송이 점차 줄었고, 발사 20년 이후부터는 거의 자료가 수신되지 않고 있다. 발사 27년 이후 아폴로234y78e626h82j90는 운항 궤도를 벗어났으나, 배터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관찰 기록을 계속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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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일: 이른바 완벽한 인간 이성은 자신이 세계와, 진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계몽하거나 착취하고 싶어한다.

식민성이란 무엇일까?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세계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이는 내가 사는 세상보다 한 차원 높은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에서 온다. 우리의 세계에조차도 나는 조금도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체념과 같은 믿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식민성이다. 나에게는 세계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식민성이라는 단어로부터 출발했으나 이 믿음은 다른 소수자성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내가 나의 세상보다 높은 곳이라 느낀 '세계'는 언젠가는 서울이었고, 언젠가는 이성애 가부장제였으며, 언젠가는 유럽이었고, 언젠가는 미국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도 늘 타인이다. 내가 참여하면서도 나는 내가 참여할 수 없음을 느낀다.

누가 소수자인지는 분명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다. 위계는 언제나 변화하며 모든 인간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소수자가 되었다가 특권을 가졌다가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수자성과 식민지성을 넘어서 무엇으로 나 자신을 설명해야 할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남들에게 줘버린 특권과 잣대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얻어올 수 있나?

나는 그것을 인간의 완전성, 특히 인간 이성의 완전성에의 부정으로 해결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부족하고, 어리석으며, 추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전제에 두자는 것이다. 타인을 깔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또한 낮은 존재임을 알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것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어떤 타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어떤 세계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알자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세계는 우리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고, 우리의 자리는 진작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 타자되기를 시도할 수 있다. 우리가 무지하다고 일컫는 타자, 흉물스럽다고 생각하는 타자가 되기를 말이다. 이를테면 알 수 없는 외계인, 그렇지만 반드시 추악한 냄새가 나고 타액이 흐를 어떤 형체의 생물체가 되어보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특질을 모두 낯설게 보는 일이다. 타액이 흐르고, 살아 숨쉬는 것들을 해치고 소비하며, 쓰레기를 낳고, 매끄럽지 못한 피부와 체모를 가진 존재, 단단한 듯 하지만 기분 나쁘게 물컹하고, 부드러운 듯 하지만 온갖 주름으로 둘러싸인 존재. 사실 이는 타자가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도 타자임을 알아보는 일이다. 우리는 늘 그런 피부를 갖고 타액을 흘려가며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런 우리는 절대 완벽할 수 없음을, 우리 인간은 결코 우리 스스로 또한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2021년 1월 15일: 나는 아직 거울 앞에 있다.

2021년 10월 6일: 나는 연약한 인간을 만든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나약한 존재임을 잊고 산다. 우리는 중립적이지 않고,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변화하고, 불안하다. 내가 미술로 만드는 것은 무기력하고 무력하며, 연약하거나 이미 손상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언젠가 이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모습이라 쓴 적 있지만, 이는 우리가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술과 철학이 약속한 우리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부질없다.

2021년 10월 19일: 인간은 나약하고, 언제나 변화한다. 이 취약함에 저항하기 위해 인간은 약속을 하지만, 약속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다. 어제의 개인은 내일 또 다른 개인일 수 있고, 우리 인간을 사로잡는 불안은 항상 변화하는 타인과의 관계에 기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