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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전경: 끝 앞에 선 말, 2024. 앤디가 크는 걸 막을 수는 없지., 2024, 얼터너티브아카이브, 서울. 사진: 라현진.

설치 전경: 끝 앞에 선 말, 2024.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룬트강, 2024, 라이프치히. 사진: 라현진.

설치 전경: 끝 앞에 선 말, 2024. A Little Bit of Solidarity Goes a Long Way, 2024, 치르카, 뮌헨. 사진: 윤지영.

끝 앞에 선 말, 2024, 설치, 쪽지: 종이에 펜.

끝 앞에 선 말, 2024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의 시가 그린 이미지를 빌려왔다. 이는 계속 선택받아야 하는 우리의 형편을 빗댄 자조이고, 기억 속 오랜 이들에게 건네는 해묵은 안부이고, 헤어질 때가 다가오는 이들에게 남기는 작별의 인사이고,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리란 유약한 약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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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8일: 임유영, 차회예고, 2020. 황인찬,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함, 2023.

2023년 11월 9일: 헤어짐을 유보할 때 선택하는 것들

2023년 12월 16일: 아직 보여주지 못한게 너무 많아 나 또 보러 올거지 맛있는거랑 재밌는거랑 잔뜩 준비해둘게

2024년 1월 26일: ich habe das nicht richtig verstanden, kannst du bitte das aufschreiben?
흔한 종이에 흔한 파란 볼펜으로 쓰여진, 독일에서의 내게 가장 자주 주어진 이런 쪽지의 형태에 이제 이별의 문장이 담긴다. 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문장들 사이에 있다.

2024년 1월 28일: 주어 하나에 동사 하나를 잇자 문장이 끝나버렸다. 이 문장이 정말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형태를 갖기도 전에 끝나버린 내 문장 옆에 이 쪽지를 남긴다.

2024년 3월 1일: 지금 함께인 이들의 손을 거쳐, 여태 같이 살고 있던 기억 속 오랜 이들을 향해 우리가 다시 함께일 미래에 부칩니다.

2024년 4월 7일: 내가 미술에서 글자를 사용하는 방법은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그것의 통일성이 없다 할 정도로 빠르게 변해왔다. 좋게 말하면 여러 방면으로 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실험해 왔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글로 쓸 수 있는 생각은 글로 쓰는 것이고,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은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라 말해왔다. 이 생각이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이 작업은 이전보다도 좀 더 일상적인 말의 세계에 있다 - 그러니까 글로 쓸 수 있지만 이미지로 만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일상적인 말의 세계를 향해 있다 - 조형 언어의 세계에 있지 않지만 나와 영원히 말로 연결된 사람들, 엄마와 오랜 연인이 나와 공유하는 언어, 그리고 그들로 대표되는, 내가 평생 발붙이고 사는 일상적인 말의 세계. 여기서부터 글자는 레디메이드와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