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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무게, 2018, 설치, 저울, 유리, 물. 사진: 심규호.

물의 무게, 2019, 설치, 저울, 유리, 물. 사진: 라현진.

물의 무게, 2018-2019


Das Leben in Deutschland ist mir noch immer fremd, da ich alles zum ersten Mal mache. Und wenn ich etwas mache, was ich nicht mal gemacht habe, fühle ich ein unsichtbares Gewicht. Mein Körper wird schwer, mein Mund wird schwer, deswegen möchte ich nirgendwohin treten, nichts sprechen.

P. Bourdieu erzählte eine Metapher eines Fisches. Ein Fisch soll in der Regel kein Wasser sehen oder fühlen können, aber wenn er umzieht, dann soll er dort ein Gewicht von Wasser fühlen.

Da Wasser langsam verdünnt wird, wird das Gewicht leichter. Das ist gleich wie ein Prozess, in dem ich mich in Deutschland langsam angewöhne. Wie ich mich langsam in Deutschland vertraut fühle, wird das Gewicht leichter. Aber die Installation endet, bevor das Wasser ganz verschwinden wird. Obwohl ich in Deutschland weiter leben werde, werde ich noch das Gewicht fühlen.


Bei dieser Arbeit inspirierte mich ein Buch von Nirmal Puwar, in dem die Fisch-Metapher von Bourdieu eingeführt wird. Eine Schlüsselsaussage für diese Arbeit ist: ›Als dunkelhäutige Soziologin schreibt Felly Nweko Simmonds mit der Fisch-Metapher von Bourdieu: ich bin ein im Meer schwimmender, frischer Fisch in der Gesellschaft der Weißen. Ich fühle am ganzen Körper das Gewicht von Wasser.‹, Nirmal Puwar (2004), »Space Invaders: Race, Gender, and Bodies Out of Place«, aus koreanischer Übersetzung.


"수조 안에 들어있는 물이 자연스레 기체로 변화해나가는 순간은 마치 우리가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처럼 눈으로 포착할 수 없지만 수조가 올라간 저울은 전시 동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줄어드는 과정", 이규식, Three Monkeys: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 2018.

"나는 이 백인 세계에서 바다를 헤엄치는 신선한 물고기이다. 내 온몸에 (...) 물의 무게를 느낀다"(1997:227), 너멀 퓨어, <공간침입자: 중심을 교란하는 낯선 신체들>, 서울 2017[2004], 226쪽에서 시먼즈를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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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8일: 공항에서는 차가운 공기 냄새, 살라미 냄새, 그리고 매연 냄새가 났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서둘러서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왔다. 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딱딱한 빵을 사와 저녁을 먹었다. 어색하게 집주인과 인사를 했고, 방으로 숨었다. 한국말이 듣고 싶었다.

2018년 5월 19일: 마트에서 직원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고, 직원은 짜증을 냈다. 잔돈 있냐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늘 조금씩 못 알아듣는다. 괜히 울적해져서 사온 배를 먹었다. 최악의 맛이었다.

2018년 7월 23일: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소수자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작가가 인용한 부르디외의 비유가 인상적이었다. 물고기는 평소에 물을 보거나 느끼지 못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을 때 물의 무게를 느낀다고 한다. 이방인으로서 날마다 내가 느끼는 무형의 무게를 떠올렸다.

2018년 8월 3일: 물의 무게를 재는 작업을 생각한다. 저울에 놓여진 수조에서 점점 가벼워지는 물의 무게는 마치 물고기가 점점 물을 느끼지 않게 되듯, 나 또한 새로운 사회에서 적응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9월 1일: <물의 무게>의 다른 모습을 생각한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낯설음과 어려움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수조와 저울로 이를 구현하고 싶었다. 다양한 수조의 물이 저마다의 속도로 만들어내는 풍경을 상상한다.

2018년 10월 20일: 지나온 몇 달을 회상하며 이 일기를 쓴다. 나의 서투른 조형언어와 독일어도 언젠가 사라질 수조의 물일 것이다. 하지만 물은 언제나 조금씩,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게 다 말라 수증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그 수증기 속에 있다.] 그것은 이방인을 누르는 무게이고, 소수자를 누르는 보이지 않는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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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5일: 내가 타인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어디엔가 소속되는 일은 오래 걸렸지만,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 일은 한순간에,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늘 이런 소속되지 않음을 두려워하며 한편으로 동경해왔다.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누군가를 우러러보며, 내 이름 뒤에 적힌 어떤 이름 뒤에 숨었다. 잠시라도 그 소속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어딘가를 떠나기 전에 내가 뒤에 숨은 그 이름으로 다른 곳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런 이름들은 꽤나 나약해서, 13시간 하늘을 날아오는 동안에 모두 벗겨졌다. 내가 그간 숨어온 이름들이 모두 벗겨져나가서 나는 이제야 내 이름으로 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아무도 발음하지 못하는 이름표를 붙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불려지지 않는 내 이름을 기다리며 알아 들을 수 없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2018년 8월 10일: ... 나는 사라지는 풍경을 꿈꾼다. 그리고 사라지는 풍경을 기획하는 나를 상상한다. 나는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사라지는 어떤 순간을, 그 순간을 기억하는 나를 위해서 계속해서 혼자 남을 것이다.